네이버 해피빈 '행복한 이야기 공모전' 장려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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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햇빛(치매)노인복지센터 작성일 13-08-23 16:46 조회 2,225회 댓글 0건본문
본 센터에서 실습하신 선생님이
네이버 해피빈에서 주관하는 '행복한 이야기'에 응모하여
장려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수상금 10만원은 햇빛에 기부하신다고 하셨고요.
수상금 기부보다도..
더 기쁜 수상의 소식.
감사합니다.
햇빛의 이야기를 또 이렇게 알릴 수 있는
좋은 추억꺼리를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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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잘 나왔어? 내가 사진을 다 찍었네 "
오진 (사회복지현장실습생)
실습 첫날, 노인복지센터 가는 길에 훤칠한 은행나무가 좋았다. 아이 조막만 했던 연둣빛 이파리가 어느새 초록으로 짙어진 5월. 드디어 3주간의 사회복지현장실습이 시작되었다. 사회복지사가 되려면 꼭 거쳐야하는 관문. 나로서는 마흔에 새로 시작한 이 공부가 과연 나에게 맞는 것일까 현장에서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매일 재가노인복지센터와 경로급식소, 치매중풍어르신이 계시는 주간보호센터에서 골고루 실습을 진행했다. 예비 사회복지사로서 마음가짐을 다잡고 늦깎이 실습 동기들과 살아온 이야기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도 생각을 나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와 서비스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했고,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에 동행하면서 복지사각지대를 보았다. 경로식당에서 급식을 도우며 어르신들의 또 다른 허전함이 무엇인지 생각했고, 어르신들과 멀리 나들이를 같이 나가면서 돌아오는 여정의 소중함도 깨달았다. 그야말로 실습기관에는 재가복지서비스의 모든 것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실습 마지막 주에 주간보호센터에서 치매어르신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실습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다.
하루는 한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쳐 드리게 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며 못한다고 하셨지만 조근조근 화면 설명을 드리고 어르신 검지를 이끌어 전화기 화면의 카메라 셔터에 살짝 손끝을 대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 어르신이 내 사진을 제대로 찍기까지는 5분이 채 안 걸렸다. 찍은 사진들을 하나둘 젖히면서 보여드리자 아주 환하게 웃으셨고 옆 어르신께 자신이 찍은 것이라며 자랑하셨다.
기간 중에 실습생은 저마다 한가지씩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데, 나는 기존의 프로그램 자료를 답습하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쳐드린 경험을 살려보기로 했다. 실상 몸이 편찮은 70대 이상 어르신들은 사진기에 찍히기는 일쑤이나 누구를 직접 찍어본 경험은 거의 없다. 먼 훗날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또 어떤 기기들이 생겨나 남녀노소 누구나 그것을 이용하고 있는데 내가 그러지 못할 때, 그것이 다름 아닌 소외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치매어르신들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을 줄 알고, 또 그것이 즐겁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기획안에 대해 사전 토의하는 과정에서는 어르신들의 욕구가 과연 있을지 또한 기기 사용이 가능할지, 사용법 설명에 대한 이해가 가능할지 등 회의적인 의견도 있었다.
마침내 프로그램 발표 날. 치매어르신 주간보호센터에서 나와 다른 실습생이 각각 30여분씩 준비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앞서 진행한 밀가루 반죽 놀이는 반응이 뜨거웠다. 밀가루 반죽은 어르신들께 친숙한 소재이고 촉감이 부드러워 자꾸 만지게 되고, 무엇인가 만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곧장 수제비를 뜨는 분도 계시고 송편이며 만두, 꽈배기, 동물, 전화기 따위를 잘 만드셨다. 송편 속으로 넣을 콩가루나 깨를 찾으시는 걸 보면 치매는 어쩌면 인간을 작동하는 여러 개의 스위치 중에서 고작 한두 개만이 꺼져있는 상태일 것이다. 밀가루 반죽 덩어리 하나를 앞에 두고 여러 가지의 모양과 이야기가 쏟아졌다. 단순하게 동기를 자극하고 행동을 스스로 이끌어내는 힘이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와 절차를 강조한 나머지 효과마저도 학습을 하는, 프로그램을 위한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가. 이어서 내가 준비한 ‘우리는 스마트 커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가발과 액세서리로 자신을 치장하고 스마트폰으로 자기와 옆 친구들도 찍어보는 내용이다.
“자, 어르신. 손가락 끝으로 얼굴에 연지 곤지 찍어볼까요?
네! 이렇게요.
자, 다같이 연지이. 곤지이. 네, 그렇게요.
전화기로 사진을 찍으실 때도 연지 곤지 찍듯이 살짝 대주기만 하세요.
꾹 누르고만 계시면 사진이 안 나옵니다.”
처음엔 대부분의 어르신이 액정화면의 셔터 모양을 꾹 누르시며 손을 떼지 않으셨다. 뭔가 시원하게 눌러지는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못해요. 난 못해.” 무조건 겁을 내시던 어르신들께 동기 실습생들이 일대일로 붙어 설명을 해드리자 그새 앵글 속의 현실을 알아차렸고 한분 한분 폰 카메라의 셔터에 ‘터치’를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생애 최초로 폰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여러 어르신들이 웃었다. 그 자체만으로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동기들이 모두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친절하게 사용법을 가르쳐 드리고 분장을 도와서 프로그램을 매끄럽게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어르신, 전화기로 사진 찍는 방법 아시겠지요? 참 쉽지요?
이제 아드님이나 손주들
전화기로 어르신이 직접 사진 찍어 주세요.”

"나, 잘 나왔어?
내가 사진을 다 찍었네, 그려."
한껏 멋을 내신 어르신의 선글라스에 비친 스마트폰 화면이 즐겁다.
태블릿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이전의 묵직한 카메라나 오밀조밀한 휴대전화보다 더 직관적이며 사용법이 쉬어졌다. 머지않아 태블릿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매만지면서 마음에 드는 '치유 프로그램 동영상'을 골라 시청하고 있는 치매 어르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순하고 짧은 순간일지라도 무엇인가를 스스로 찾아서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 그것이 자기결정권과 인간 존엄의 본질이다. 어르신은 여전히 새로운 것을 하고 싶고 그럴 때 행복하다.
몇 해 전 환갑을 갓 넘긴 어머니께서 화면이 넓은 스마트폰을 쓰고 싶다고 하셨을 때 나는 그것의 쓸모없음에 대해 얼마나 소상히 아뢰었던가. 젊은 사람들 인터넷이나 게임하는데 주로 쓰고, 사용방법도 어렵고 전화기 회사의 장삿속이며 요금은 또 얼마나 비싼지. 어머니의 눈이 침침해지고 손끝이 무뎌지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왜 알지 못했을까. 일년에 몇 번 못 보는 자식들 얼굴을 또렷이 보고 싶으셨던 마음을 나는 왜 태연히 지나쳤을까. 오늘 낮엔 보리쌀을 섞어 밥을 짓고 택배로 보내주신 삼삼한 열무김치를 쓱싹쓱싹 양푼에 비벼 세 식구가 맛나게 먹는 모습을 당신께 전송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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